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성 이론, E=mc², 그리고 그의 특유의 헝클어진 머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불리는 이 천재의 삶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로 나치의 위협을 피해 영국 옥스퍼드로 망명했던 시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프레데릭 린데만과의 특별한 관계다.
나치의 그림자와 옥스퍼드로의 망명
1933년 봄, 유럽은 전쟁의 그림자에 뒤덮여 있었다. 독일에서는 나치가 권력을 잡았고, 유대인들은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이 혼란의 한가운데에 아인슈타인이 있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였지만,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 28일, 아인슈타인은 프로이센 학술원을 탈퇴하며 독일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나는 다시는 내 조국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에게는 피난처가 있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였다.
프레데릭 린데만과의 만남
옥스퍼드로의 초대는 프레데릭 린데만이라는 물리학자로부터 왔다. 린데만. 이름만 들어도 당시 영국 과학계에서는 쟁쟁한 인물이었다. 그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사실 꽤 오래되었다. 1911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 과학계의 거장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아인슈타인과 린데만은 처음 만났다. 당시 린데만은 최연소 참가자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양자 이론 예측을 실험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20여 년. 두 사람은 이제 전혀 다른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에게 옥스퍼드는 안전한 피난처였고, 린데만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린데만은 1931년과 1932년, 아인슈타인을 옥스퍼드로 초청해 강연을 하도록 주선했다. 특히 1932년에는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5년간 매년 한 달씩 머물 수 있는 '학생직(studentship)'을 제안하기도 했다.
과학과 정치의 접점에서
1933년 5월, 아인슈타인은 옥스퍼드에 도착했다. 그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6월 2일, 한 강연회에서 그는 "불쌍하고 외로워 보이는 작은 인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가 연설을 마치자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아인슈타인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고 한다.
린데만은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다른 위험에 처한 과학자들도 돕고 있었다. 그는 4월 중순 베를린을 방문해 위협받는 물리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옥스퍼드로 초청하는 데 앞장섰다.
서로 다른 두 사람, 하나의 열정
두 사람은 성격도, 정치적 견해도 달랐다.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고, 린데만은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깊이 존경했다. 아인슈타인은 린데만에 대해 "물리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고, 새로운 발견의 중요성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했다.
린데만 역시 아인슈타인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존경심은 깊었다. 후에 그는 아인슈타인의 부고를 쓰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단순함과 친절함, 다른 이들에 대한 겸손한 관심과 유머 감각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을 매료시켰다."
아인슈타인의 옥스퍼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곧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오래도록 남았다. 옥스퍼드 과학사 박물관에는 지금도 그의 칠판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 속의 특별한 우정
이 이야기는 단순한 두 과학자의 만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위기의 시대에 과학과 정치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존중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도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후 변화, 팬데믹, 국제 갈등... 이런 때일수록 아인슈타인과 린데만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볼 만하다. 과학적 진실의 추구와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까? 그들의 시대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여전히 같을까?
역사는 때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인슈타인과 린데만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들의 우정과 협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참고문헌: Nature; Einstein in Oxford: the untold story of an unlikely friendship
"Einstein in Oxford: the untold story of an unlikely friendship" (Andrew Robinson, Nature)
아인슈타인이 나치의 위협을 피해 옥스퍼드에서 보낸 시간과 그의 친구였던 프레데릭 린데만 교수와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미국으로 영구 이주하기 전, 영국을 잠시 방문했으며, 옥스퍼드에서 린데만의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 린데만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온 과학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후에 윈스턴 처칠의 과학 자문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상호 존경과 협력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고, 1911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에서 처음 만나 1930년대까지 이어졌다. 아인슈타인이 옥스퍼드에서 강연하고 린데만이 위협받는 유럽의 물리학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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